먹고 사는 얘기/사는 얘기

무더운 여름날, 서울 노들섬 노을 여행

mistyfriday 2021. 7. 29. 16:38

점점 살기 힘든 기후로 변화하고 있는 대한민국. 여느 해보다 더운 올여름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본격적인 무더위 시작 이후로는 외출도 자제하고 잔뜩 움츠러들어 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 창 밖으로 펼쳐진 화창한 하늘, 멋진 노을 감상하는 즐거움으로요. 그러다 하루는 2021년 여름 노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큰 맘 먹고 나섰습니다. 때마침 무더위가 절정이었던 날에.

어제와 같은 핑크빛 노을을 기대하며 찾은 곳은 노들섬. 십 년 전에 왔을 때는 버려진 땅이었는데 그 사이 멋지게 치장을 해 복합 문화 공간이 되었더군요. 사진과 뉴스로 소식 보고 들으면서 언젠가 꼭 한 번 와보고 싶었습니다. 한강변이라 어디보다 멋진 노을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요.

크지 않은 섬은 반듯하고 깔끔한 건축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컨테이너는 아니지만 보고 걷다보면 언뜻 건대, 창동 등에 있는 '~ 애비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각 건물에는 서점과 식당, 카페, 공예품과 꽃을 파는 상점 등이 있었어요. 이날은 십 년만에 찾은 노들섬의 변화와 깔끔한 건축물의 모습을 감상하고 사진에 담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몰을 세 시간 정도 앞둔 시간이라 날이 좀 식어있을 것을 기대했는데, 요즘엔 해가 질 때까지 햇살이 정오와 다르지 않아서 예상보다 고생을 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매일 저녁 노들섬에선 한강을 배경으로 두고 버스킹 공연들과 전시가 이뤄졌을 것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개점과 동시에 휴업 상태가 된 것이 아쉽죠. 2019년에 개장한 노들섬 공간은 작은 규모의 복합 쇼핑몰 또는 문화 공간을 연상시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깔끔하고 반듯한 공간 구성을 좋아해서 사진 찍기에도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36도에 달하던 무더운 날씨에도 저처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분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다들 괜찮으셨겠죠?-

내부 규모가 크지 않아서 한 바퀴 둘러보는 데 30분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노들섬 바깥쪽 한강변을 걸어보자 싶어 계단을 걸어 내려왔어요. 내부와 달리 이곳은 10년 전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양쪽으로 한강 너머 서울 풍경이 펼쳐지고,

한강 대교 아래로 지나며 산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한강 대교가 만든 그늘에서 오후의 열기를 식히는 분들도 있었어요. 깨끗한 노들섬 내부도 좋지만 바깥쪽 산책길로 걸어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복작대는 서울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한 여유를 맛볼 수 있어요. 다만 요즘처럼 더울 때는 말고요. 그늘이 없습니다.

다리 아래를 지나며 빠질 수 없는 구도의 사진. 올 여름은 햇살이 강렬해서 강한 대비의 선명한 사진들을 찍기 좋습니다. 날만 좀 덜 더웠어도 아니 습도만 조금 낮았어도 이곳저곳 신나게 다닐 것 같은데 말예요.

그래도 이 더위에 한강 위에서 수상 스포츠 즐기는 분들을 보니 어느 정도 대리만족이 됩니다. 한강에서 웨이크보드를 즐기는 모습은 이전에도 심심찮게 봤지만 패들보드를 즐기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예전에 호주 멜버른에서 패들보드를 탔을 때 보드가 워낙 많이 뒤집어져서 한강처럼 깊은 곳에서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 모습이 빛나는 햇살, 도시 풍경과 멋지게 어우러져서 마음에 드는 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노들섬 한 바퀴 산책을 마친 후 기대했던 노을 시간을 기다립니다. 여의도 방향으로 나 있는 제법 큰 잔디밭은 노을을 맞이하고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어요. 63 빌딩과 더 현대 서울 등 고층 빌딩의 실루엣 덕분에 다분히 서울다운 노을을 볼 수 있거든요. 해넘이 시간이 가까워오자 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나 캠핑 체어를 펴고 앉아 오늘 밤 펼쳐질 쇼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도 기대가 커졌고요.

일곱시 반이 지나니 대기가 점차 붉어졌습니다. 종일 어디 갇혀 있었는지 약하게나마 바람도 불어왔어요.

온 몸이 땀에 젖으며 기다린 이날의 노을.

전날처럼 신비한 핑크빛은 아니었지만 황홀한 주황색과 오묘한 푸른빛 구름이 춤을 추듯 시시각각 얽히고 풀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다림이 후회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삼십 분 정도 짧은 쇼가 펼쳐지는 동안 저를 포함한 관객들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무대 앞 이곳 저곳으로 움직이며 환호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피날레에 이르러 기대했던 핑크빛 노을이 아주 짧게 하늘을 물들이고 이내 검푸른 밤하늘로 돌아갔습니다. 십 년만에 찾은 노들섬의 진중한 정취, 2021년 여름을 기억하게 하는 멋진 노을 덕에 썩 괜찮은 무더위 속 산책이 됐습니다. 이제 소원 성취했으니 더위 좀 물러가면 그 때나 다시 이곳저곳 여행해 보려고요. 생각보다 너무나도 길어지는 답답함을 서울 여행으로나마 달래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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