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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대한민국

내가 만난 여수 봄 바다의 일곱 가지 얼굴. with 올림푸스 PEN-F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바다를 넘지는 않았지만 남쪽 끝에 있는 곳이니 그럭저럭 멀리 다녀온 셈입니다.

사실 지난달 원고를 완성하고 바로 떠나고 싶었지만 머뭇거리다 한 달이 지났네요. 집 앞 개천에 있는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문득 '여수'가 가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여수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바다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떠나 보기로 했습니다.

배낭 하나 매고 KTX로 세 시간, 여수 엑스포역에 도착했습니다. 요즘 여행 다니기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여수보다는 여수에 있는 바다였습니다. 첫 번째 책 원고를 마치고는 후쿠오카에 다녀왔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한적한 해변 혹은 항구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사실 여수는 이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도시지만, 문득 그 이름이 떠오른 것도 하나의 인연일테니 그리고 바다에 둘러싸인 도시와 크고작은 섬에 저 하나 앉을 자리 없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수 엑스포역으로 떠나는 편도 기차표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지라 내려가는 KTX 안에서 여수 바다를 근사하게 볼 수 있는 장소들을 검색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1박 2일의 짧은 여행에서 담은 사진들을 통해 여수 바다를 볼 수 있는 몇몇 장소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처럼 문득 '여수' 이름 하나에 끌려 떠날 이들을 위해서요.


바다, 바다, 바다.


그리고 사진.

- 올림푸스 PEN-F와 두 개의 렌즈를 챙겼습니다 -


1박 2일 여행인만큼 짐은 속옷과 양말 하나씩이 전부였습니다. 나머지는 카메라와 삼각대 등 촬영 장비가 전부였죠. 얼마 전 PEN-F와 17mm F1.8 렌즈, 그리고 새롭게 초광각 렌즈 9-18mm F4-5.6 렌즈로 여행용 장비를 구성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9-18mm 초광각 렌즈가 여수 바다 풍경을 담는 데 제격이었습니다. 이렇게 세트를 구성해도 무게가 1kg이 채 되지 않고, 점퍼 주머니에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 큰 가방이 필요하지도 않았죠. 이렇게 가벼운 여행에는 가벼운 장비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박 2일동안 본 여수 바다 풍경은 이랬습니다.


1. 오동도 산책


점심께 여수 엑스포역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오동도였습니다. 기차역과 가까워서 슬슬 걸어갔는데, 서울에서 매일 미세먼지로 인해 누런 하늘만 보다 청명한 하늘과 바다를 보니 걷기만 해도 즐겁더군요. 으리으리한 여수 엠블 호텔을 지나니 오동도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더군요. 멀다면 먼 거리인데, 걸어서 섬으로 갈 수 있어 심리적으로 가깝고 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육지와 섬을 왕복하는 작은 버스도 있고요. 이 사진은 육지쪽에 있는 자산 공원에서 찍은 것입니다.



걸어서 돌아보기에 오동도는 제법 큰 섬입니다. 여유있게 돌면 두세 시간정도 걸릴 정도입니다. 섬 곳곳에는 계단으로 연결된 전망대들이 있어서 바다와 섬의 기암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초행이라 보이는 전망대마다 내려갔는데, 그 수가 제법 많아서 나중에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다리가 후들거리더군요. 제가 간 날은 일요일이라 관광객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초입에 있는 사진의 전망대, 그리고 등대 아래에 있는 전망대 두 곳이 가장 괜찮았습니다.



오동도 산책길은 대부분 해안보다 섬 안의 숲 사이로 나 있어서 전망대로 내려가는 계단이 무척 반갑습니다. 전망대는 난간 등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암석이라 발을 내딛을 때 주의해야 하지만 그만큼 보기에 좋습니다. 물이 특히 맑고 투명해서 맑은 날 가만히 앉아 바다와 하늘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과 회복이 됐습니다. 산책길은 험하거나 가파르지 않기 때문에 연인, 가족 단위로 천천히 걸으며, 그리고 전망대마다 다른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오후를 보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갈 길이 멀어 두어 시간 만에 섬을 빠져 나왔지만 섬 주변을 도는 유람선과 모터 보트 등 즐길 거리도 있더군요.




2. 자산공원에서의 약속


오동도 입구 뒤쪽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계단을 통해 편하게 올라갈 수 있는 자산공원이 있습니다. 정상에는 카페와 식당 등의 편의 시설과 돌산공원으로 이어지는 케이블카 탑승장에 몰린 사람들로 시끌벅적했습니다. 이 위에서 보는 전경이 꽤나 근사했는데 오동도와 그 주변 섬, 선착장 그리고 우뚝 선 엠블 호텔 풍경이 맑은 날씨 덕분에 지중해 어딘가에 있는 휴양지처럼 보이더군요. 돌산공원과 함께 여수 바다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포인트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동도를 둘러 보고 자산 공원에 올라 경치를 보고 케이블카를 통해 돌산공원으로 넘어가는 여행 코스를 짜면 좋겠습니다.



자산공원 정상에는 이렇게 소망을 적은 하트 모양의 목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여기저기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긴 하지만 배경이 넓은 바다다 보니 괜히 좀 더 특별해지는 기분입니다. 연인과 함께 여수를 여행한다면 둘만의 기록을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한 번 와볼만한 곳이죠? 저도 다음에는 연인과 함께 올 수 있기를..!



3. 돌산공원의 야경


여수 바다를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알려져 있는 돌산 공원은 돌산대교 주변으로 해안선과 능선, 그리고 작은 섬 장군도를 한 번에 보고 담을 수 있어 인기있는 곳입니다. 실제로 '여수 밤바다'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 중 대부분이 이 곳에서 찍은 사진이더군요. 자산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편하게 넘어올 수 있지만 저는 건너편 남산공원에서 한차례 허탕을 치고 오느라 해가 거의 다 진 시간에야 겨우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노을이 무척 예쁜 날이었습니다. 1박 2일 여행에서 한 번뿐인 밤은 무척 소중하잖아요.



돌산공원 아래에 있는 전망대에서 삼각대를 세워 야경을 찍었습니다. 불을 밝힌 돌산대교와 잔잔한 바다, 그리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군도를 한 장에 담은 이 사진이 제 기억에도 '여수 밤바다'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추천대로 돌산공원은 여수 밤바다를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습니다. 9-18mm 초광각 렌즈를 챙겨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박 2일 여행 계획을 세우신다면 일몰부터 야경은 돌산공원에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해질녘 자산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하늘 위에서 노을을 보며 돌산공원으로 가는 것을 많이들 추천하시더군요.



4. 향일암의 아침


향일암은 여수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일출 명소라는 수식어는 물론, 여수에 다녀온 사람들 대부분에게서 이곳의 이름을 들었거든요. 겨울보다 부쩍 빨라진 일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저는 작은 모텔에서 새벽 세 시반에 짐을 챙겨 나섰습니다. 돌산도의 남쪽 끝자락에 있는 향일암은 여수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때문에 일출을 보기 위해선 아침 일찍 서두르거나 아예 그 근처 숙소를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는 방법도 있는 향일암까지 가는 버스가 여수 엑스포역에서 네 시 반에 출발하니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여행와서 밤을 새다시피 하고 일출을 보러 갈 마음을 먹는 게 쉽지 않겠지만요.


저는 월요일 아침 네 시 반에 여수엑스포역에서 버스를 타고 향일암으로 갔습니다. 버스로는 약 40-50분이 걸렸고, 다행히 아침 여섯시 일출 시간 전에 일출 전망대로 유명한 향일암 관음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향일암까지 올라가는 길이 무척 길고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섯 시 사십 분쯤 관음사 앞에 도착하니 옷이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일출을 찍기 위해 많은 분들이 모인다고 들었는데,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그날은 저 혼자여서 오롯이 혼자 향일암의 아침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 뜨는 해지만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여유 혹은 부지런함, 그리고 같은 해를 보는 장소가 어디인지에 따라 하루의 시작이 주는 감동은 완전히 다른 것 같습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를 때까지도 땀이 멈추지 않았지만, 상쾌한 공기 그리고 깨끗한 하늘과 햇살 덕분에 기분이 무척 상쾌했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해 떠오르는 장면을 보며 소원을 빌고는 한다지만, 그날 저는 그저 이 풍경에 취해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향일암의 일출은 여수를 여행한다면 꼭 한 번 볼만한 장면이지만, 그러기엔 제법 많은 힘과 노력이 들기 때문에 쉽게 추천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라면 일출을 보고 와서 점심 때까지 조금 더 잠을 자는 방법을 선택하겠습니다. 돌산 공원에서 본 여수 밤바다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 그리고 장면이었습니다.



5. 무슬목 해변의 기다림


향일암이 있는 돌산도에 또 한 곳의 일출 명소 무슬목 해변이 있습니다. 돌산도의 남쪽과 북쪽을 잇는 가는 길목에 있는데, 그 폭이 100m 정도에 불과해 한 지점에서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모래가 아닌 뭉돌로 이뤄진 해안, 그리고 세 개의 작은 섬 실루엣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이 장관을 연출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저는 한 번 뿐인 일출을 향일암에서 봤기 때문에 무슬목 해변은 둘째날 잠시 들러 섬과 해안의 모습을 보고 담는 데 만족해야 했는데, 일출로 유명한 곳이지만 해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쓰레기가 많고 이런저런 벌레들도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은 인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일출 한 장면만을 위해서라면 와 볼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6. 루프톱 카페에서의 낮잠


바다가 보이는 마을. 여수 구 항구 뒷편에 있는 고소동/중앙동은 색색으로 벽과 지붕을 칠하고 벽화들로 치장해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천사 벽화마을이 됐습니다. 여수 엑스포와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로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여행지가 된 여수가 여행자들을 맞는 또 다른 방식인 셈입니다. 바다와 함께 보이는 색색의 지붕들은 외국의 멋진 항구 도시처럼 아름답고, 골목마다 그려진 벽화들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것을 대변하듯 요즘 천사 벽화마을 곳곳에는 근사한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제가 간 날도 수많은 건물들이 새단장을 위해 공사를 하고 있더군요. 일출을 보고 오느라 나른한 아침, 천사 벽화마을에 있는 루프탑 카페에서 차를 마시기 위해 올랐습니다. 제가 찾은 곳은 '낭만카페'입니다.





1,2,3층 어디에 있어도 여수 바다가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이 인상적인 이 카페는 특히 옥상이 최고의 명당입니다. 테이블과 소파들로 옥상을 꾸며 놓았는데, 제가 있는 동안에도 많은 여성분들이 옥상에 올라와서 SNS용 사진을 찍고 가시더군요. 저는 혼자 여행이라 이렇게 아인슈패너를 놓고 여행의 여유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따뜻한 남쪽 공기와 햇살에 옥상의 의자에 앉아서 깜빡 낮잠이 들었던 낭만카페의 옥상도 짧은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장소 중 한 곳입니다. 여수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고요.



7. 오래된 항구와 노을


저녁 여덟시 반 서울로 출발하는 KTX 티켓을 예매하고 돌아가기 전까지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출발 전 계획이 떠올랐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내려왔는데, 첫 여수행의 욕심에 잠까지 줄여가며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정신없이 이틀이 지났더군요. 그래서 고소동 아래에 있는 여수 옛 항구, 지금은 해양공원이 된 해변가에서 벤치에 앉아 해가 지길 기다렸습니다. 둘째 날도 날씨가 맑고 해가 따가웠는데, 역시 늦은 오후부터 주황색 노을이 예쁘게 바다와 땅에 퍼지더군요. 때마침 정박된 어선들을 보고 있던 눈 앞 풍경이 근사해서 삼각대를 세우고 타임 랩스 동영상으로 해 지는 항구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 PEN-F + 17mm F1.8로 촬영한 타입 랩스 동영상 -



그렇게 다섯 시부터 일곱 시가 훌쩍 넘은 시각까지 해가 지는 걸 바라보고, 하나 둘 씩 불빛이 켜지며 야경이 완성되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무엇도 그리워하지 않았던 두 시간은 출발 전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습니다. 이틀간 바쁘게 다니며 실컷 감상한 여수 바다 풍경들을 떠올리니 다음에도 여유가, 그리고 바다가 필요할 때 와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여유 부리다 자칫 저녁을 거를뻔했지만, 그래도 여행인데 굶고 돌아갈 수 없지 하며 근처에 유명하다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사들고 KTX를 탔습니다. 그동안의 어느 여행보다 다양한 시선과 감정으로 바다를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바다의 매력은 바라보는 장소와 시간은 물론 그 때의 감정에 따라 완전히 그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2018년 봄의 저는 여유를 갈구하며 바다를 찾았고, 여수 바다는 남도의 인심처럼 제가 바랐던 것 이상으로 후하게 차려 내었습니다.

이래서 아무리 짧아도, 여행을 다녀올 필요가 있는 것이겠죠. 가볍고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여수는 바다가 멋진 도시입니다. 여행을 앞두고 계시다면 다양한 시선으로 바다와 마주해 보는 것도 좋은 계획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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