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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대한민국

2017년 가을, 구리 한강시민공원 코스모스 밭에서.


 해마다 가을이면 빠지지 않고 다녀오던 곳이었는데 지난 이, 삼년 결석을 했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보려 했는데 변명거리가 잘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그냥 전처럼 간절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을도, 사진도, 여행도. 주말마다 이 멀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 정도로 그 시절 저는 뜨거웠는데 말입니다.


 길에 핀 코스모스 몇 송이를 보고 오랜만에 이 곳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없을 것 같은 날과 시간을 골라 다녀왔습니다. 원래도 그랬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 많은 곳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9월 22일부터 24일까지 개최된 구리 한강시민공원 코스모스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오전에 도착해 노을까지 보고 온 제법 긴 나들이었습니다.


- 언젠가의 사진 -


 구리 한강 시민공원의 풍경은 제가 '가을'을 생각할 때 함께 떠오르는 몇 장의 장면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좋아하기도 하고, 매년 같은 곳을 가는 일이 제게는 흔치 않아서요. 몇 번은 그 시절 연인과 함께 했었는데, 기분 때문인지 사진들도 그 날 찍은 것들이 더 마음에 듭니다. 역시 사진은 사람이 찍는 건가 봅니다.

- 라이카 M-P + Summilux 35mm asph -


 이 날은 라이카 M-P와 올림푸스 E-M10 Mark III를 함께 챙겼습니다. 긴 여행을 앞두고 준비한 M-P 그리고 Summilux 35mm 렌즈와 천천히 적응 중입니다. 특히 35mm 즈미룩스 렌즈의 깔끔한 연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여행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 포스팅의 사진들은 모두 M-P와 Summilux-M 35mm F1.4 asph 렌즈로 촬영했습니다.


축제는 끝났지만, 가을은 이제 시작


 축제가 끝낸 직후의 아침은 아직 곳곳에 열기가 남아 있습니다. 넓은 잔디 광장에 어지럽게 놓인 플라스틱 벤치와 아직 철거하지 않은 홍보 부스 텐트, 쓰레기 봉지들이 짧은 3일 축제의 여운을 느끼게 합니다. 딱 한 번 축제 기간에 온 적이 있는데 축제 인파에 여기 저기서 음악 소리까지 들려서 흥은 절로 났지만 정작 가을 꽃을 감상하기엔 어수선해서 그 후로는 주로 축제 직후에 방문하고 있습니다. 축제가 끝난다고 꽃이 사라지진 않으니까요.


 이 날 아침에도 여전히 공원 가득 코스모스가 가득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스모스밭을 보며 느끼는 감동, 이건 앞으로 몇년을 더 봐도 적응되지 않길 바랍니다.



 축제 기간을 피해 여유롭게 가을꽃을 즐기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나온 시민들, 옷을 맞춰 입고 온 다양한 모임들의 가을 소풍으로 이만한 곳이 없겠다 싶습니다. 저는 혼자였지만 꽃밭이 워낙 커서 괜찮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코스모스 꽃은 이렇게 역광에서 꽃의 뒷면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햇살을 받아 선명해진 꽃잎의 실루엣은 다른 꽃들과 비슷비슷한 색상보다 이 꽃에 대해 더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사진을 찍기 위해 쪼그려 앉고 뷰파인더 속으로 강하게 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눈이 부신, 고생 아닌 고생이 필요하지만 돌아와 마음에 드는 사진들은 대부분 이런 장면들입니다.



 가족, 친구들끼리 함께 가을꽃을 즐기는 모습도 좋지만, 꽃밭을 여유롭게 걷는 연인들의 모습이 이 곳과 가장 잘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위 사진이 이 날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인데, 흔들린 사진이지만 렌즈로 들어온 빛이 만드는 플레어와 전경의 소프트한 표현이 제가 느낀 이 순간의 감정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등장 인물 역시 이 날 본 연인들 중 가장 근사했고요.



골든 타임


 기분 탓인지 예전엔 종일 걸어도 끝이 없을 것처럼 넓었는데 이 날은 두어 시간쯤 걸으니 어느새 꽃밭을 한바퀴 빙 둘렀더군요. 이대로 돌아갈까 하다가 서너 시간 남은 노을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애초에 그럴 요량으로 읽을 거리와 먹을 거리들을 챙겨 오기도 했고요. 밝은 햇살 아래 코스모스는 말 그대로 아름답지만, 저는 노을 아래 코스모스의 자태를 더 좋아합니다. 아마 올 가을은 이 곳에 더 올 일이 없지 싶어 책을 한 권 보며 노을을 기다렸습니다. 가을 햇살에, 바람에 집중은 잘 되지 않았지만요.



 다섯 시쯤 되니 오후와는 확연히 달라진 색온도. 저멀리 하늘에 조금씩 붉고 노란 물이 들기 시작하고 여전히 화창한 빛이 보기 좋을 정도로 적당해졌습니다. 새로운 곳에 도착해 오전과는 다른 가을 축제를 즐기는 마음으로 꽃밭을 다시 걸었습니다. 오전보다 많아진 사람들은 저마다의 축제를 위해 멋을 낸 모습들이었습니다.




 친구들끼리 함께 사진을 찍으며 생의 한 계절을 기록하는 이들의 모습은 무척 뜨거워 보입니다. 그들은 그저 즐겁기 위해 왔다고 하지만, 후에 돌아보면 이 순간을 열정적이었던 때로 기억할 것입니다. 붉은 노을 아래서 모든 것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루를 모두 쓴 가을 나들이. 돌아오니 머리가 맑아진 것 같아 다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나 봐요.

 앞으로는 빠지지 말고 가을마다 꼭 축제를 즐기고 와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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