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곧 여름이 올 것만 같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니 싫은 것 투성이지만 냉면맛이 난다는 건 분명히 행운입니다. 끝나지 않는 냉면 탐방, 이번에는 충무로에 있는 필동면옥에 다녀왔습니다. 비교적 가까운 데 있는데도 이번에 첫 방문이었습니다. 필동에 있어서 필동면옥인데, 충무로역에서 냉면집까지 걷는 길에 8,90년대 서울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즐거웠습니다. 이 길 때문이라도 종종 가게 될 것 같아요.



사실 그동안 필동면옥을 굳이 찾아가지 않은 것은 종종 방문하는 을지면옥과 그 뿌리가 같고 맛도 대동소이 하다는 평 때문이었습니다. 을지면옥 냉면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이미 익숙한 맛이라 필동면옥을 뒤로 미뤄뒀는데 이날 처음 인연이 닿았네요. 가게의 외관과 간판은 물론 내부까지 기억 속 어딘가에 있는 옛 서울 식당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영화 세트장의 그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점심시간이 한바탕 지난 후에 방문해서 사람도 많지 않아 좋았고요. 1층 홀은 안쪽까지 꽤 크게 마련돼 있고, 계단이 있는 것으로 보아 2층에도 좌석이 있는 것 같았지만 확인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유난히 화창하던 봄날의 햇살이 낡은 유리창으로 들어와 오래된 나무 테이블을 빛내니,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장면 속에 있는 것 같아 괜히 설레더라고요.



친구와 함께 먹을 냉면 두 개를 주문한 후 앞에 놓인 무김치를 보니 역시나 을지면옥에서 보던 그것입니다. 흔히 '의정부계'로 불리는 이 냉면 스타일은 마니아층이 무척 두텁다죠. 필동면옥, 을지면옥, 서울 평양면옥 세 집이 모두 의정부 평양면옥에서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실제 세 곳의 냉면은 육수와 면, 고명까지 거의 같다고 합니다. 특히 파와 고춧가루를 올린 것이 이 의정부계 냉면의 특징입니다. 물론 각자 영업한 기간이 길어서인지 맛은 미묘하게 다르다고 하네요. 



자, 이것이 필동면옥의 냉면입니다. 맹물처럼 맑은 육수에 다른 곳보다 가늘고 찰기가 있는 면, 편육 두 점에 파와 고춧가루 고명까지. 을지면옥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달걀 반숙도 똑같이 있었는데, 바쁘셨는지 이미 달걀은 육수에 빠져있는 상태였어요.


- 을지면옥의 냉면 -




면을 풀기 전 육수를 한 모금 들이키니 맛이 을지면옥과 달랐습니다. 육수가 맑은 것은 같지만 감칠맛이 을지면옥의 육수보다 더 강하고 염도도 더 높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평양냉면의 삼삼함과는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진한 맛의 육수였어요. 다만 면에 간이 되어있지 않아서 육수와 면을 함께 먹으면 간이 맞더군요. 고명으로 올려진 고기는 을지면옥보다 평양면옥이 더 맛있었습니다.


을지면옥과 필동면옥, 비슷하지만 다른 매력의 냉면을 하나씩 먹어보고 평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저는 을지면옥의 담백함에 한 표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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