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후 오히려 사진에 흥미를 잃은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낯선 도시의 장면들을 담는 일이 너무 즐거운 나머지 돌아와 서울에 있는 동안에는 음식이나 소품 등 일상의 장면을 간간히 담을뿐, 사진 찍으리라 마음을 먹고 나서는 날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래도 가끔 답답한 날은 가까운 한강이나 언덕에서 도시의 야경을 감상하며 머리를 비우곤 합니다. 그리고 그럴때, 그냥 앉아만 있으면 뭐하나 싶어 카메라를 챙깁니다. 삼각대도 함께요.


 셔터를 누르면 짧게는 10초, 길게는 1분 가까이 카메라가 사진을 찍습니다. 그 동안 저는 야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또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하곤 합니다. 그러다보면 야경 사진을 찍는 건 낚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다림'이라는 방법과 낚아올린 한 컷의 쾌감이 닮았습니다.


- 응봉산의 야경, PEN-F | 17mm | F13 | 20s | ISO 200 -


 이 날 제가 좋아하는 응봉산 전망대에서 삼각대를 세우고 PEN-F로 사진을 찍으며 서울의 풍경을 담는 게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습관처럼 찍는 일상에서 벗어나 이렇게 찍고 싶었던 것을 찍는 것이 제법 오래됐다는 생각에 잊고있던 즐거움이 떠올랐습니다. 또 하나, 제가 그 동안 몇몇 도시를 올림푸스 카메라와 함께 다니며 담은 야경들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가방도 들고 다니기 싫어하는 제가 팔뚝만한 작은 삼각대라도 챙기고 다닌 끝에 얻은, 저로서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정리해보니 다양한 카메라와 함께 담았더군요.


체코 프라하 그리고 OM-D E-M5 Mark II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을 꼽으라면 모스크바와 프라하 여행 둘을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할 것입니다. 전자가 치열했다면 후자는 아름다웠습니다. 페트르진 언덕 한켠에 혼자 서서 삼각대 위 카메라 화면으로 프라하의 첫번째 아침을 보던 순간은 앞으로 수많은 여행이 계속되더라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첫 번째 프라하 여행에서 인연을 맺은 올림푸스 카메라와도 여전히 함께하고 있으니 여러가지로 특별하다 하겠습니다.


 첫번째 여행인만큼 삼각대를 챙겨 다니며 밤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삼각대 가방을 매고 호텔을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담은 프라하의 야경은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는 열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OM-D E-M5 Mark II | 16mm | F10 | 20s | ISO 200 -


 프라하에 도착한 첫 날, 프라하 시내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늦게 시작된 식사가 늦은 밤까지 이어지며 도시에 어둠이 내렸는데,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 환상적이었습니다. 함께 떠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놓치는 장면들이 아쉬워 삼각대를 세우고 장노출로 야경을 담았습니다. 약 20초간 기록된 장면들은 밤에 더 아름다운 프라하 성과 첨탑들이 인상적인 도시의 야경, 그리고 이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움직임이 기록돼 있더군요.

 - OM-D E-M5 Mark II | 57mm | F13 | 25s | ISO 200 -


 해가 뜨기 전에 카렐교를 찾은 날, 20초 혹은 30초씩 사진을 찍다보니 날이 금방 밝아오고 다리 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군요. 이 날 새벽에 찍은 장노출 사진은 첫 여행의 설렘에 잠 못 이루다 찬 공기를 마시며 텅 빈 길을 걸어 내려가던 그 설렘이 있어 특별합니다. 올림푸스 E-M5 Mark II 카메라에 렌즈는 12-40mm F2.8 PRO 렌즈를 사용했는데, 비교적 가벼운 무게 덕분에 작은 삼각대로도 단단히 고정할 수 있었던 점, 30초 이상의 장노출 설정이 가능한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12-40mm F2.8 PRO 렌즈는 단초점 렌즈에 비해 빛갈라짐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 단렌즈를 챙기지 않은 것을 후회한 기억이 나네요.


 - OM-D E-M5 Mark II | 27mm | F13 | 30s | ISO 200 -


 카렐교 옆의 저 다리는 마네수프 다리입니다. 이 때는 카렐교 외에는 이름도 몰라요, 관심도 없었지만 일년 후 두 번째 여행에서 카렐교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특별한 다리가 됐죠.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촬영이 도시가 서서히 밝아오며 숨고르기를 했는데, 카렐교 난간에 삼각대를 올려놓고 찍은 이 사진은 구름이 걷히고 밝아지는 하늘과 아직 깊은 잠에 빠진 블타바 강이 조화를 이룬 것이 마음에 듭니다.


다시 프라하 그리고 PEN-F


 일 년 후, 다시 프라하를 찾았을 때 놀랍게도 지난 여행의 모든 장면들이 떠올라 기뻤습니다. 이 먼 곳에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땅이 있다는 것이 기뻤달까요. 두 번째 체코 여행에선 사진을 정말 열심히 찍었습니다. 첫번째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동안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말해주고 싶어서. 이 때는 이제 막 출시한 PEN-F를 챙겨 갔는데,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어서 여행 내내 목에 걸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 PEN-F | 12mm | F11 | 20s | ISO 200 -


 두 번째 여행에서도 새벽에 카렐교를 찾았습니다. 종일 사람으로 가득한 이 다리가 텅 빈 순간을 보는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역시나 삼각대에 카메라를 세우고 20초씩 장노출 촬영을 했는데, 12mm F2.0 단렌즈가 12-40mm 렌즈보다 예쁜 빛모양을 만들어줘서 좀 더 마음에 드는 사진이 됐습니다. 아마 다시 체코를 가도 한 번은 꼭 새벽 텅 빈 카렐교를 찾을 것 같습니다.


 - PEN-F | 12mm | F14 | 30s | ISO 200 -


 두 번째 체코 여행에서는 남부의 아름다운 소도시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고풍스러운 도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하루밖에 머물지 못한 게 아쉽더군요. 처음이자 마지막 밤, 도시 전경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야경을 담으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호텔에서 게으름을 부리다 나온터라 삼각대를 챙길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고감도 핸드 헬드 촬영과 저감도 장노출 이미지를 비교해보니 역시 밤에는 삼각대가 꼭 있어야겠다 싶었습니다.


- ISO 5000 (왼쪽) | ISO 200 (오른쪽) -


 삼각대 없이 ISO 5000 고감도를 설정해 촬영한 왼쪽 이미지와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 시키고 찍은 오른쪽 이미지를 비교하면 조금 귀찮아도 야경 촬영에는 삼각대를 꼭 챙겨야겠다 싶습니다. ISO 5000의 고감도임을 감안하면 왼쪽 이미지 역시 나쁘지 않지만 암부 손실을 나중에 회복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우니까요.

 - PEN-F | 12mm | F18 | 30s | ISO 200 -


- ISO 3200 (왼쪽) | ISO 200 (오른쪽) -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돌아와 프라하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던 날은 프라하 성과 카렐교가 동시에 보이는 야경을 담았습니다. 첫 번째 여행에서 우연히 근방을 지나치며 본 스팟이었는데, 여기서 보는 야경도 무척 아름답더군요. 이날도 미니 삼각대나마 챙긴 덕에 깨끗한 장노출 야경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ISO 3200 이미지와 비교하면 확실히 깔끔하고 매끈하고, 장노출 촬영의 이점인 빛갈라짐도 더해져 한결 드라마틱한 야경이 됐습니다. 12mm F2.0가 만드는 단렌즈 특유의 아름다운 빛표현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타이베이 & PEN-F


 프라하에 다녀온 후 곧장 대만 타이베이로 향했습니다. 카메라는 그대로 PEN-F를 들고 떠났고, 17mm 렌즈를 하나 더 챙겨 음식과 사람들을 좀 더 타이트하게 담았습니다. 타이베이 여행은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려 '사진 여행'으로서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잘 먹고 즐기며 충전했던 개인적으로 뜻깊은 여행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거짓말처럼 하루 그림처럼 화창한 날이 펼쳐져 고민없이 첫 날 갔던 단수이 워런마터우를 한 번 더 찾았을 때, 그 유명한 야경을 PEN-F의 인터벌 촬영으로 담으며 여행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소중합니다.


 - PEN-F | 17mm | F11 | 10s | ISO 400 -


 타이베이에서는 내내 비가 와 야경을 담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밤 깨끗하게 갠 하늘 덕분에 샹산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케이블카나 버스 없이 도보로 30분 이상 올라야 하는 제법 험난한 코스였고 삼각대를 세울 공간조차 마땅치 않지만 어찌어찌 삼각대가 쓰러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담은 한 장이 타이베이를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호주 멜버른 & OM-D E-M10 Mark II


 남반구는 처음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호주 멜버른 여행은 풍요로움의 연속이었고, 여유와 행복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이 여행은 올림푸스 OM-D 시리즈 중 가장 작고 가벼운 E-M10 Mark II로 촬영했는데, 종일 목에 걸고 다녀도 부담이 없어 사진보다 여행 자체를 즐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 OM-D E-M10 Mark II | 12mm | F10 | 20s | ISO 200 -


- OM-D E-M10 Mark II | 12mm | F10 | 20s | ISO 200 -


- OM-D E-M10 Mark II | 12mm | F11 | 15s | ISO 200 -


 행복한 도시 멜버른에서는 매일 밤 얼큰하게 취해 있었고, 때문에 밤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습니다. 지나고 나니 무척 아쉽습니다. 멜버른을 가로 지르는 야라 강은 주변에 화려한 도시의 야경이 펼쳐져 사진찍기 무척 좋았습니다. 카페 테라스와 야외 바가 즐비한 것을 보면 멜버른 여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임을 알 수 있죠. 이상 고온으로 한낮 기온이 40도까지 오르고, 밤에도 30도가 넘었던 여행 첫 날, 역시나 그냥 잠들기 아쉬운 첫 번째 밤에 야라 강 주변 야경을 담았습니다. 어느 도시보다도 세련된 실루엣, 화려한 조명이 손쉽게 멋진 결과물을 안겨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싱가포르 & OM-D E-M1 Mark II


 밤이 아름다운 도시로 싱가포르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낮보다 오히려 밤이 더 기억에 남을만큼 아름다웠는데, 마리나 베이는 물론 클라크 퀘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야경도 기억에 남습니다. 첫 날 저녁을 먹고 나선 길에 본 무지개빛 다리의 야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음날부터 내내 무더위에도 삼각대를 넣은 가방을 매고 다녔습니다. 싱가포르는 어떤 여행보다도 많은 야경 사진을 찍은 도시였습니다.

- OM-D E-M1 Mark II | 14mm | F20 | 15s | ISO 200 -


 클라크 퀘이의 Read bridge, 무지개빛 조명이 강에 비쳐 만드는 야경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 OM-D E-M1 Mark II | 12mm | F11 | 15s | ISO 200 -


- OM-D E-M1 Mark II | 12mm | F14 | 20s | ISO 200 -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마리나 베이의 야경과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수퍼 트리 쇼는 놓치지 말아야 할 싱가포르의 밤입니다. 멀라이언 파크에서 바라보는 마리나 샌즈 베이 호텔의 모습과 매일 밤 열리는 레이저 쇼는 삼각대와 나란히 앉아 몇 시간이고 보내기 지루하지 않고,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수퍼 트리 쇼는 그 거대한 규모 때문에 환상 속에 있는 느낌을 줍니다. 두 곳에서 모두 삼각대를 사용해 20초 가량의 장노출 사진을 찍었는데, 이 여행으로 첫 경험을 한 12-100mm F4 IS PRO 렌즈는 줌렌즈임에도 빛갈라짐 형태가 무척 아름다워서 여행용 렌즈로 더 없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경 자체로는 싱가포르가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서울, 여전히 PEN-F

- PEN-F | 17mm | F13 | 20s | ISO 200 -


 그리고 제가 사는 도시 서울의 야경. 대부분 별 감흥이 없지만, 이렇게 종종 '내가 이렇게 멋진 도시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스팟이 있습니다. 이 날 응봉산에서 담은 한 장의 야경도 일 년에 한 두번은 꼭 담는, 매번 비슷한 뷰지만 역시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서울 야경을 담으며 한바탕 제 여행과 밤, 그리고 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해봅니다. 카메라가 아무리 좋아져도 역시 밤에는 삼각대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결론도 내 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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