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때는 황금 연휴가 막 시작되던 무렵, 날씨가 가을가을 했고 기분은 사뿐사뿐했습니다. 이번 연휴는 운동을 좀 해보자 싶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나섰습니다. 어머니가 안 탈거면 자전거를 치워버리려고 하셨거든요. 그래도 한 달에 하루 정도는 꾸준히 타고 있는데 말입니다.


역시나 그새 쭈굴쭈굴해진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늘 가던 코스를 달렸습니다. 사실 같은 풍경이 질려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할까 했지만 확인해보니 이 날은 평일이더군요. 접이식 자전거는 평일에도 휴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저는 고지식한가 봅니다.


바람이 시원해서인지, 연휴의 힘인지는 몰라도 평소 체력과 달리 쉼 없이 중랑천에서 한강에 들어섰고, 이 날 1차 목적지인 반포대교까지 쭉 달렸습니다. 게다가 시간도 평소보다 빨랐습니다. 최초 목적지는 뚝섬 유원지였지만 잠수교의 긴 내리막을 내려가는 짜릿함은 너무나도 매력적입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조금 넘어서 반포 한강공원에 자전거를 세웠습니다. 챙겨온 게 전자책과 물 한병 뿐이라 젖은 풀밭에 그냥 앉았어요.



걸어온 사람,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 등 반포대교는 언제나 북적입니다. 새빛섬이 있는 반포대교 좌측은 나들이를 나온 가족/연인들의 텐트로 빈자리를 찾기가 힘들어 주로 무지개 분수가 있는 우측 공원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안쪽 풀밭은 인파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눈치 좀 보면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어요.


그렇게 자전거를 세우고 챙겨온 물과 책을 꺼내며 기대했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날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읽었습니다. 제목에 끌리고 초반부의 두 인물 묘사가 좋아서 쭉 읽어내려갔는데, 평소 좋아하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표현이 떠올라 어렵지 않게 즐긴 책이었어요. 인물별로 이야기를 차근차근 진행하는 구성과 그 이야기들의 크고작은 중첩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을 읽는동안 땀이 식었고, 뻐근했던 다리도 풀려서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나무 그늘은 제 몸뚱이를 가려주기에 너무 작아서 해가 낮아짐에 따라 조금씩 저도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만, 나쁜 것은 없었던 오후였죠. 물 말고 단 간식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만 빼면.



게으른 제 자전거에는 전조등이 아직 없습니다. 몇 개 구매한 것마다 금방 고장이 난다던가, 제 핸들 바에는 너무 커서 장착이 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주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는 편입니다. 이 날도 다섯 시쯤 책을 덮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은 낮보다 훨씬 더 시원하고, 한강에는 슬슬 노랗고 붉은 물이 드는 것이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곧이어 사고가 난 것을 알았죠.


출발하기 전 뒷바퀴를 점검할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바람이 빠진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강 공원에서 출발할 때도 뒷바퀴가 말랑해진 것을 눌러보며 '설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잠실 방향으로 자전거를 달리며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뒷바퀴에 펑크가 났다는 것을. 몇 분마다 자전거를 세워 임시로 바람을 넣고 달렸습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 청담역까지의 거리가 무척 길게 느껴졌습니다.



- 결국 지하철을 -


출발은 상쾌했으나 결국 돌아올 때는 청담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와야 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자전거를 끌고 오는 길도 멀게 느껴지더군요. 연휴의 시작에 일어난 일이라 결국 연휴가 끝날 때까지 타이어 교체도 할 수 없어 아쉬웠던 일상의 작은 사고(?)였습니다. 자전거를 탈 줄만 알지 정비할 줄을 몰라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그래도 이 날 이 성치 못한 자전거로 30km를 달린 것이 내심 뿌듯..?


더위를 많이 타는 저는 봄/가을에 바짝 타야 하는데, 연휴도 끝났으니 빨리 타이어 교체하고 분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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