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다시 없을 연휴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사라졌습니다. 월요일까지 연휴가 이어져 '월요병'은 없지만 그보다 더한 후유증이 당분간 많은 분들을 괴롭힐 것으로 보입니다. 연휴 내내 두통이 오도록 푹 쉬다보니 뭔가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 마지막 날엔 집 근처 공원에서 오후를 보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찾게되는 북서울 꿈의 숲은 어느새 가을로 물들었더군요. 가까운 곳에 이런 공원이 있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긴 연휴의 마지막을 가족/친구/연인끼리 공원에서 한적하게 보내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습니다. 사람이 무척 많았고, 텐트도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공원이 넓으니 저 하나 앉을 자리가 없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선물받은 1인 피크닉 매트를 챙겨왔죠. 자전거 탈 때 주로 챙기는데, 이렇게 공원갈 때도 유용하더군요.



원래는 책 한권 가볍게 들고 공원으로 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만 얇은 에코백에 챙긴 짐이 제법 많아졌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원고 구상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챙긴 노트북과 수첩, 그래도 공원이니 그냥 갈 수 없다며 집어든 데일리 카메라 그리고 책 읽을 때 꼭 있어야 하는 아이팟 클래식.

화려한 피크닉 매트에 한 데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분히 'SNS 허세'용인데, 다른분들 사진처럼 근사하게 나오지 않아 2-30장을 찍어야 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민망하더군요.


이 날은 이와이 슌지의 '립반윙클의 신부'를 읽었습니다. 전날 우연히 영화를 보았는데, 그 독특한 분위기와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마음에 들어 책까지 읽게 됐습니다.

지난 연휴에 영화를 정말 많이 봤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립반 윙클의 신부, 그리고 역시나 소설 원작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책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보려고 합니다.



나에게는 행복의 한계가 있어. 더 이상은 무리다 싶은 한계가 그 누구보다 더 빨리 찾아와. 그 한계가 개미보다 작아. 이 세상은 사실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 모든 사람들이 잘 대해 주거든. 택배 아저씨는 내가 부탁한 곳까지 무거운 짐을 날라주지. 비 오는 날에는 모르는 사람이 우산을 준 적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쉽게 행복해지면 나는 부서져 버려. 그래서 차라리 돈을 내고 사는 게 편해. 돈은 분명히 그런 걸 위해 존재할 거야.     - 립반 윙클의 신부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이뤄지는 만남들, 불안한 삶들이 태엽처럼 맞물리며 돌아가는 이 이야기는 내내 축 가라앉아 있지만 그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그 감정선이 공감되는 바가 있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고, 영상으로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읽었습니다. 이와이 슌지가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았지만 역시 책으로 보는 것이 훨씬 좋았습니다. 영화는 세 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 타임인데도, 나중에 책을 읽으니 생략된 부분이 많더군요. 그리고 그것들이 영화에서 이해되지 않던 것들을 명확히 알려줬습니다. 특히나 제가 가장 좋았던 이 소설의 엔딩은 영화를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하지만 영화도 아름다운 영상미와 주인공 나나미 역을 맡은 쿠로키 하루의 연기 덕분에 책으로 먼저 이야기를 접한 분들도 충분히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나중에 다시 한 번 보려고요.



책을 보는 데 서너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 볼때쯤 되니 공기가 쌀쌀하더군요. 카메라를 그냥 가져가기가 아쉬워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했습니다. 내내 앉아 있느라 엉덩이가 아프기도 했고요. 아직 절정은 아닙니다만, 이 날 북서울 꿈의 숲 풍경은 다가올 가을의 절정을 기대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몇몇 장면들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더군요. 짧지만 즐거운 산책이었습니다. 


이렇게 열흘의 긴 연휴가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힘내서 뭐라도 해야죠!


연휴 후유증 빨리 떨쳐내시고, 즐거운 가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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