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잘 지내시죠?


 힘든 여름을 버티고 선선한 가을 바람에 한 숨 크게 내쉬니 한 계절 잘 버텼다는 생각에 상쾌하지 않으세요? 좋아하는 계절이 와서 저는 요즘 즐겁습니다. 하루는 이유 모를 답답한 기분이 드는 날에 더위 걱정 없이 종일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 날이 있었습니다. 요즘들어 실컷 걸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오래됐단 생각에 오후부터 저녁까지 한강을 산책했습니다. 걷다보니 옆으로 하나 둘 보이는 풍경들에 지난 시간들이 겹치는데, 대략 삼사 년만에 이렇게 한강 산책을 하는 것 같더군요. 그 때도 가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라, 카페든 방이든 앉아 있으면 무언가 해야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것 같아서 한강변을 계속 걸었습니다. 여의도에서 출발해 두어 시간 지나니 목적지인 반포 한강공원에 닿더군요. 특별한 장면은 없었지만, 걷기 좋은 날씨와 마음 먹은 날 걸을 수 있는 여유가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사실 이 날 목표는 반포 한강공원의 달빛 무지개 분수를 보고 귀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 바람 불어오기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이 곳 생각이 나곤 합니다. 올해도 아마 그래서 때마침 한강을 걷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의점 가서 맥주를 샀습니다. 한 캔만 사려고 했는데 네 개 만원 행사를 하길래 무리해서 네 캔을 샀고, 두 개는 집에 가져왔습니다. 요즘 부쩍 맥주를 많이 마십니다.

 자리를 챙겨 앉으니 어느새 제법 붉은 노을이 들었더군요. 해가 부쩍 짧아진 하루, 이런 데서도 가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일 무지개 분수 쇼가 펼쳐지는 반포 한강 공원은 선선해진 공기에 마음 설레는 요즘같은 때 서울의 낭만을 즐기기 가장 좋은 곳입니다. 비록 다들 짝과 무리를 지어온 사람들 속에서 저만 혼자였지만, 오후부터 걸음을 걸은 발바닥이 욱씬거렸지만, 오랜만에 야외에서 보는 서울의 노을에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혼자 있어도 그리 외롭지 않습니다.



 달빛 무지개 분수 쇼가 열리는 반포대교 남단 오른쪽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는데 다리 너머 왼편에서 멋진 붉은 빛이 비쳤습니다. 시계를 보니 분수 시작 시간은 한 시간 정도가 남은 터라, 가방을 챙겨 반대편으로 넘어가 새빛 둥둥섬 뒤로 펼쳐진 이날의 노을을 담았습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 요 무렵은 노을이 특히 아름다운 시기인 것 같습니다. 서울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때이기도 합니다.




8시, 달빛 무지개 분수 시작


 다리 왼편의 노을이 모두 지고 다시 오른편으로 넘어오니 어느새 다리 앞이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돗자리를 깔고 마주 앉거나 둘러 앉은 연인, 친구들은 음식과 술을 놓고 이날의 축제에 이미 흠뻑 빠져있습니다. 그 사이에 끼어 앉아서 8시를 기다렸고, 정각이 되어 음악과 함께 분수쇼가 시작됐습니다. 달리 대화 상대가 없었던 이날은 맥주를 마시며 사진으로 밤풍경을 담았습니다.


 혹시 달빛 무지개 분수쇼를 보러 갈 계획이 있으신 분들을 위해 이용 시간 내용을 공유합니다.




반포대교 달빛무지개분수 이용시간

[4~6월, 9~10월]
평일 (매회 20분) ⇒ 12:00, 20:00, 20:30, 21:00
휴일 (매회 20분) ⇒ 12:00, 19:30, 20:00, 20:30, 21:00


[7~8월]
평일 (매회 20분) ⇒ 12:00, 19:30, 20:00, 20:30, 21:00
휴일 (매회 20분) ⇒ 12:00, 19:30, 20:00, 20:30, 21:00, 21:30


*기상조건(우천, 강풍 등)이나 행사, 에너지 절약 등에 따라 분수가동이 중지·변경될 수 있습니다.




 8시 정각부터 약 20분간 무지개 분수쇼가 끝나고 나면 곧이어 8시 30분부터 다시 쇼가 시작됩니다. 예전에는 분수쇼 사이의 간격이 제법 길었던 것 같은데 이제 평일 기준 8시부터 세 번의 공연이 마치 한 시간 반짜리처럼 길게 이어집니다. 저는 8시 공연은 다리와 가장 가까운 광장 끝에 걸터 앉아서, 다음 공연은 다리와 모인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 뒷편에 앉아 감상했습니다. 시원한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밤을 즐긴 날이었습니다.





 이곳 저곳 다니며 분수쇼와 사람들의 모습을 담다보니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가더군요. 공교롭게 늘 이 달빛 무지개 분수쇼는 혼자 보게 되지만, 그래도 힘든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느라 외로운 줄 모르고 지났습니다. 연인과 친구들이 모여 새로운 계절을 환영하는 장소로 이곳만한 곳이 없겠다 싶습니다. 


 시간 내서 한 번 다녀오세요.

 이날 저는 '문득 내가 이렇게 멋진 도시에서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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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Traveler.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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