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종종 업무로 홍대로 출근하면, 그가 안내하는 홍대/연남/동교동 맛집에 이끌려 가는 재미가 대단합니다. 이 날은 덮밥 괜찮겠냐고 하길래 두 말 없이 '그럼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와 저는 일본 음식을 좋아하는 식성이 잘 통하는 편입니다.

 홍대 앞 골목길에 있는 코미치는 반지하에 있어 지나가다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들어서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남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혼자였으면 아마 다음에 오겠다고 하며 발길을 돌렸을 것 같습니다.


 아기자기한 실내 인테리어를 보니 여성분들만 가득한 이 분위가 일견 수긍이 갑니다. 일본풍의 작고 수수한 인형과 그림들로 꾸민 실내는 전형적인 '홍대 앞 여성취향 식당' 분위기입니다.

 크지 않은 실내에 테이블은 예닐곱 개가 있는데, 점심 시간이라 빈 자리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다들 덮밥 하나씩을 앞에 놓고 계시더군요.


 실내를 둘러보며 종종 제품 촬영용으로 방문하는 이 동네 스튜디오의 어느 룸을 떠올렸습니다. 하나하나 신경써서 고른듯한 가구와 소품들에서 공간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더군요.

 꼼꼼한 면이 느껴지니 음식 맛에도 기대를 하게 됩니다.


 솜씨 좋은 그림으로 꾸민 메뉴판은 사실 어떤 음식인지 알아보는 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지만, 메뉴판 자체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으니 이름과 설명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덮밥 메뉴가 많고 파스타와 샐러드 메뉴도 함께 판매합니다. 저는 보통 첫 방문때는 가장 앞에 있는 기본 메뉴를 주문하는 편이지만, 그는 토마토 크림 & 크림 카레를 모두 맛볼 수 있는 토크 반반밥이 더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네, 계산은 그가 할테니 저는 천 원 더 비싼 걸 주문해야죠.


- 토크 반반밥 -


 꽤 넓은 접시에 담긴 토크 반반밥은 토마토 크림 + 크림 카레의 약자입니다. 두 가지 덮밥 소스를 반반씩 담고 가운데 흑미밥으로 방파제를 만든 뒤 그 위에 달걀을 올렸습니다. 모양새는 일본식 카레라이스나 하이라이스지만 소스는 카레와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토마토 크림은 로제 소스와 비슷하고, 크림 카레는 카레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크림 소스 파스타의 그 크림 느낌입니다. 둘 다 파스타 소스에 가까워서 느끼한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이 둘 모두 느끼하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느끼한 음식을 참 좋아합니다. 두 가지 맛을 번갈아 보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접시가 큰 편이지만 소스가 대부분이라 실제 양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 시쯤 되니 허기가 지더군요. 이 식당은 양마저 여성 취향에 맞춰져 있습니다.

 코미치는 아기자기한 분위기, 소담스러운 모양새의 음식 등 여러모로 여성들이 좋아할 요소들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가끔 밥도 먹고싶고 느끼한 것도 포기하기 싫을 때 생각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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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Traveler.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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