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으로 보는 프라하의 밤 - 아주 개인적인 베스트 컷


 중간중간, 여행이 필요할 때 꺼내보는 두 번의 프라하 여행 이야기가 이제 거의 바닥을 보입니다. 머리끝까지 가득했던 설렘 때문에 움직이는 모든 순간을 이야기로 담고자 했던 첫 번째 여행과 달리 두 번째 프라하 여행은 지난 추억을 복기하느라 그리고 재회의 감격에 빠져있느라 개인적인 감상이 대부분인 이야기가 됐습니다.


 두 번의 여행을 마무리하기 앞서, 프라하의 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사실 제게 프라하는 해 뜨기 직전 여명 아래 우아한 실루엣으로 기억된 도시지만 해가 진 후 비현실적으로 붉은 조명이 밝힌 장면들에 대한 기억도 그 못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해가 지고난 후에도 도무지 멈추지 않았던 그 도시에서의 걸음, 그 중 아래 장면들을 통해 이 도시의 밤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 밤의 느낌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흑백 사진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프라하 아니면 지구 어느 곳이든 여행을 앞둔 분들의 마음에 설렘 한 숟갈이나마 보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건축물


 주황색 지붕의 건축물들은 해가 지고 나면 그 색을 잃지만 붉은 조명 아래서 그 우아함은 또 다른 매력을 뽐냅니다. 도시의 어느 길을 걸어도 좌,우로 펼쳐진 아름다운 건축물의 실루엣 덕분에 걸을 맛이 납니다. 그 이름을 일일이 다 알 수 없지만 건물들의 외관과 붙어있는 표식들, 그리고 열린 문 틈으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 그 이야기를 유추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죠. 가끔 안에서 굉장한 파티라도 열리는 듯 빨갛고 파란, 혹은 보라색 조명이 환하게 차 있는 창문들을 볼 때가 있는데, 그럼 저절로 걸음이 멈추고 바라보게 됩니다. 프라하의 밤의 낭만, 그 절반은 이 아름다운 거리들이 만들어 줬습니다.


광장


 프라하 구시가 광장은 24시간 내내 붐비는 곳입니다. 해가 진 후에도 이 인파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느낌인데, 이들을 위해 붉은 램프를 세우고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광장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인 천문 시계탑과 틴 성당에는 밤에도 환한 조명이 비추는데, 덕분에 낮보다 밤에 그 위용이 더욱 돋보입니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바쁜 일정 탓에 구시가광장의 밤을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두 번째 여행에서는 숙소가 광장 근처라 매일 원없이 광장의 밤을 즐겼습니다. 날씨 화창한 날 밤에는 짙은 감색 하늘 아래 과장된 주황색의 조명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죠.


거리


 프라하의 밤거리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저는 레서 타운 광장(Malostranské náměstí : 말로스트란스케 나므네스티)를 꼽겠습니다. 프라하 성 지구와 카렐 교 사이, 성 니콜라스 교회 앞에 있는 작은 광장인데 사방을 에워싼 건축물의 실루엣과 붉은 가로등 색, 그리고 굽이친 길을 유유히 흐르는 트램의 조화가 무척 멋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처음 스타벅스 텀블러를 구매하기 위해 찾은 곳인데 이 멋에 반해 지금은 프라하의 밤거리를 그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가 됐습니다. 딱히 약속이 없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이 중 한 건물 벽에 기대 한 시간쯤 풍경을 바라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선율


 해가 져도 이 도시를 공백없이 채우는 음악은 끊이지 않습니다. 특히 작은 골목에 펼쳐지는 버스킹이 낮에 보았던 유명 광장, 성 앞, 다리 위의 공연과는 색다른 매력이 있는데 모여든 관객들과 함께 웃고 환호하는 즐거움이 대단합니다. 이 두 사람의 존재만으로 뒷편의 레스토랑은 블타바 리버 뷰 못지 않은 명당이 된 것만 같습니다. 밤거리를 걷다 작은 선율에 이끌려 달려가 본 장면들은 마치 어렸을 적 소풍에서 보물이 적힌 쪽지를 찾은 것처럼 함박웃음을 짓게 하더군요. 다음엔 사진 말고 동영상으로도 담아 도시가 그리울 때 두고두고 봐야겠습니다.

우연


 프라하 블타바 강을 잇는 여러 다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카렐교(Karlův most)지만, 저는 그 옆에 있는 마네수프 다리(Mánesův most)를 그 못지 않게 좋아합니다. 여기 서면 카렐교가 무척 아름답게 보이는 데다, 프라하 성과 일직선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이 다리는 두 번째 여행의 숙소가 있던 요세포프(Josefov) 지역과 가까워 알게 됐습니다.


 여행의 끝무렵, 프라하 성에 있는 레스토랑을 향해 걷던 길에 마네수프 다리에서 우연히 영화 촬영 장면을 보았습니다. 옛 유럽인들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말과 수레와 함께 촬영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 장면을 보는 것 같아 무척 짜릿했습니다. 별다른 세트장 필요 없이 이 다리 위에 서있는 것만으로 그 시대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회색 도시에서 살다 온 제게 흥미롭기도 했고요. 많은 사람들이 카렐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만, 블타바 강의 크고작은 다리들은 조금 길을 돌아가더라도 한번씩 가보면 나름의 낭만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사람


 밤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낮의 광장에서 본 사람들보다 어쩐지 지치고 힘들어 보이지만, 때문에 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뒷모습을 만들기도 합니다. 아마 절반은 여행자였을 트램 정류장 앞의 인파를 담으며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저마다 다른 하루를 마무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려 노력해 봅니다. 화창한 낮보다 화려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지만 그것이 사진이나 책 속에서 볼 수 없는 이 도시의 민낯과 같다는 느낌이 들어 여행의 또다른 감흥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뒷모습은 제 사진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의 밤은 그 주제에 아주 좋은 배경입니다.

낭만


 블타바 강 유역의 캄파 섬(Kampa Island)은 낮에는 전통 시장과 거리 공연이 끊이지 않고, 벤치마다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지만 밤이 되면 그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이 도시에서 가장 고요한 곳 중 하나가 됩니다. 카렐교 끝자락에서 캄파 섬의 텅 빈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늦은 밤까지 소음이 끊이지 않는 다리와 광장 위와 대비돼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손을 꼭 잡고 이 거리를 걷는 두 사람의 풍경이 순간 뮤지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여 사진을 담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 도시를 '낭만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만, 카렐교 위 프로포즈와 구시가광장의 웨딩 촬영 그리고 캄파섬의 이 한 장면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도 이 섬에 '낭만'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소개합니다. 흔들리고 어둡지만 제게는 아주 의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감상


 유럽의 몇 대 야경 중 하나에 든다는 카렐교의 야경. 하지만 역시 그 속에 있을 때는 진가를 알 수 없죠. 그래서 다리 위 전망대나 좌우의 여러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구시가 지구 한쪽에서 한 뼘 길이의 작은 삼각대에 의지해 강과 다리의 야경을 담았는데, 조금 아쉽긴 해도 사람들에게 '이게 프라하의 야경이야'라고 보여주기엔 부족하지 않아서 두고두고 꺼내 보게 됩니다. 저는 주로 알려지지 않은 골목을 다니며 여행을 즐기는 편이지만 역시나 그 도시이 랜드마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흥 혹은 감동은 분명히 있습니다. 카렐교의 야경은 낮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만약 오직 이 강에만 머물러야 한다면 저는 낮보다 밤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당신의 밤을 사랑하게 된 이유들.


 남에게 보여주는 사진들이 있는가 하면, 혼자 꺼내보는 사진들이 있습니다. 프라하의 밤거리를 걸으며 남긴 사진들은 낮과는 다른 풍경도 풍경이지만, 찬 공기나 가로등의 색, 걸음을 멈춰 서 있을 때 들렸던 소리 등 그 감흥들이 좀 더 진하게 묻어있어 여행을 추억하기에 더 좋은 장면들입니다. 긴 여행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제게 의미있는 장면들을 늘어놓은 시간이 무척 즐겁습니다. 다시 또 그 밤거리를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 혼잣말을 할 정도로요.


 만약 쫓기지 않고 여행할 수 있다면, 여행이 오롯이 내것이 되는 시간을 찾아보세요.

 저는 밤거리를 걷는 시간들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