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충무로에서 명동으로 건너가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건물이었습니다. 식사 시간에는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그렇지 않더라도 커다란 궁서체의 상호명이 시선을 끌어 당겼다고 할까요. 제법 유명한 식당이라는 것은 아쉽게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특히 평양 냉면과 초계탕이 유명하다는 말에 올해는 봄이 오기전부터 손꼽아 기다렸죠. 이른 더위 정도는 찾아와 등이 따끔따끔해야 더 맛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어제, 이제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는 일기 예보를 보고 '때가 됐다'며 충무로로 향했습니다.


- 두근두근한 순간 -


 서울 시내 평양 냉면 탐방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지라 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메뉴는 당연히 '냉면'이었지만, 테이블마다 놓인 커다란 유리그릇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다행히 이 날은 혼밥이 아니어서, 2인분 부터 주문 가능한 초계탕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뭐, 혼자였더라도 2인분을 주문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평래옥의 첫인상은 사실 우래옥이나 을지면옥, 필동면옥 등 그동안 방문했던 평양 냉면집에 비해 평이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냉면집이 30년 전쯤에 멈춰있는 듯한 내부 인테리어로 들어서는 순간 벌써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데 반해, 평래옥은 비교적 최근에 내부 공사를 한 것인지 깔끔하고 매끈한 분위기였거든요. 하지만 주문 후 나온 뜨거운 육수를 한모음 넘기니 '캬'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육수라기보단 갈비탕 국물에 가까운 진한 맛과 개운함 때문에 벌써 속이 든든한 기분이 들더군요.


 게다가 김치인 줄 알았던 빨간 반찬이 알고보니 닭고기 무침이었습니다. 삶은 닭고기를 잘게 찢어 매콤 새콤한 양념에 무쳤는데, 이것이 뭐 술, 밥, 면 다 훔쳐갈 도둑입니다. 혹시 이것도 리필이 되나 조심스레 여쭤보니 정식 메뉴를 맛보기로 주시는 것이라 하시더군요. 포장해서 부모님 가져다드릴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날의 메인 메뉴 초계탕. 커다란 유리 그릇에 국물이 찰랑일 정도로 가득 담겨 나오는 초계탕은 차가운 육수에 닭고기와 배추, 오이, 배 등을 넣은 요리입니다. 사실 저는 난생 처음 먹은 초계탕이었습니다. 닭고기뿐이었으면 약간 서운한 양이었을텐데, 다들 같은 마음인지 냉면같은 탄력있는 면도 한 주먹 푸짐하게 말아서 나옵니다. 이름만 듣고는 삼계탕 같은 뜨거운 음식을 떠올렸던 적이 있는데, 여름에 어울리는 시원한 음식입니다. 가격은 1인당 13,000원으로 제법 높지만 장정 두 명이서 2인분을 먹으면 배가 부를 정도로 푸짐해서 좋았습니다.



 우선 육수를 들이키니 새콤한 맛으로 시작해 냉면 육수의 담백함으로 끝나는 깊이가 대단합니다. 일본에 다녀와서 며칠간 잃었던 입맛이 이 한모금으로 단숨에 모두 회복될 정도였어요. 친구와 저는 연신 '야', '우와', '어허', '이야', '맛있다'라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대화 없이 식사에 집중했습니다. 육수가 단연 발군이었고, 닭고기가 질기거나 퍽퍽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면은 일반적인 냉면집의 냉면과 비슷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육수 맛이 강하다보니 냉면 메뉴에 비해 면 자체가 부각되지 못하는 느낌이었어요. 연신 면과 닭고기, 채소를 먹고 육수를 들이켜니 따가웠던 오후 햇살도, 다가오는 여름에 대한 걱정도 잊게 됩니다.


 기분좋게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친구가 그러더군요. 복날이 오기 전에 한 번 더 오자고. 복날에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을 테니까, 라고.

 여름엔 당연히 냉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올여름엔 초계탕이라는 아주 강력한 라이벌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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