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마리나 베이의 야경에 반한 탓에, 여행 첫날은 자정이 지나서야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와 짐을 정리하겠다는 약속을 하루 더 미루고 쓰러져 잠을 청했던, 제법 고된 하루였어요. 다음 날 아침, 보기 좋게 늦잠을 잤고 호텔 조식 마감 시간에 겨우 맞춰 카야 토스트 하나와 두유 한 모금을 입에 가득 물고 로비를 나섰습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열대성 기후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슴팍을 미는 듯 막아선 여행 두번째 날, 저는 싱가포르의 골목을 여행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이 바로 이 곳, 하지 레인(Haji lane)이었어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관광 스팟 중 하나인 아랍 스트리트와 불과 한 블록 건너에 화려한 골목 하지 레인이 있습니다. 걸음을 재촉하면 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지만 볼거리가 많아 제법 오랜 시간을 머물렀어요. 특히나 개성있는 벽화를 배경삼아 인증샷 찍는 즐거움이 대단해서 언제나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술탄 모스크를 중심으로 한 아랍 스트리트가 그들의 법칙 때문에 어딘가 경건하고 조심스러웠다면 그라피티와 먹거리, 소품이 가득한 하지 레인은 활기차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괜히 신이 납니다. 



 벽마다 빠짐없이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하지 레인은 확실히 바로 옆 골목의 아랍 스트리트와 다른 세상입니다. 짧은 치마와 민소매 차림의 발랄한 여성들이 화려한 그림 앞에서 서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멋스러운 옷과 아기자기한 소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피부색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이곳에선 다들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더군요.




 벽마다 그려진 감각적인 그림들과 강렬한 색, 사실 이런 벽화 거리는 여러 도시에서 볼 수 있지만 싱가포르의 깔끔함과는 어딘가 상반되는 반전 매력이라 흥미로웠어요. 혼자 여행했던 제게 화려한 벽화 앞에서의 인증샷이 그저 남의 이야기였어도 말이죠.





강렬한 색에 이끌려 골목을 몇 번씩 다시 걸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라 아랍 스트리트가 한가해서 조금 실망한 것이 사실인데 하지 레인의 화려함 때문에 마음이 금방 풀어져버렸죠. 사진찍기 좋고, 트렌디한 작은 숍들이 많다보니 여성 관광객의 비율이 무척 높은데, 그래서 이 거리에 머무는 시간이 더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햇살을 풍부하게 받고 사는 사람들은 색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다죠. 하지 레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벽화를 이루고 있는 과감한 선과 색도 그렇지만, 골목 곳곳에 세워진 조형물부터 노천 카페의 테이블과 의자까지 쉽게 볼 수 없는 강렬한 색으로 치장한 모습이 이 거리 분위기를 활기차게 했습니다. 결국 이 짧은 골목을 빠져 나가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하지 레인에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트렌디한 옷과 액세서리, 소품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쇼윈도에 걸린 옷들이 서울에서 보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싶습니다. 그 외에도 어느 나라 남자들이나 모두 좋아할 키덜트 숍과 여행 분위기 물씬 풍기는 노천 식당들이 왁자지껄한 일요일의 거리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바로 한 블럭 옆의 아랍 스트리트의 경건하고 조용한 분위기와 상반된, 그야말로 유쾌한 골목이었어요.


여유로운 동네 티옹 바루와 아기자기한 하지 레인의 풍경은 도시 풍경을 좋아하는 제게 싱가포르의 한 조각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시 그 도시에 가게 된다면 잊지 않고 다시 찾을 곳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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