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이 여행은 첫번째 여행은 아니지만  모든 여행의 시작입니다"



"여행은 이미 몇 주가 지나고, 거리 풍경과 시끄러운 지하철 소음도 이제 어렴풋하게, 동화속 풍경같던 건물들과 낯선 얼굴들도 이제는 꿈처럼 아득할 정도로, 그렇게 여행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왜 모스크바였을까?’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미친여행 in 모스크바 - 프롤로그 : 왜 모스크바였을까? http://mistyfriday.kr/2091)


지난해 2월의 어느날, 이 한 줄을 쓰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소요됐습니다. 머릿속에는 지난 그 시절의 이야기가 한가득 차서 작은 틈으로 버겁게 빠져 나오는데, 정작 어떻게 입을 떼야 할지 망설였거든요. 제 인생에 다시 없을 여행, 어떻게 기록하던 무척 중요한 기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물론 이야기가 시작되고 나서는 그 생각이 금방 사라졌습니다. 무용담을 늘어놓듯 신나게 때로는 그 날의 특별했던 감정에 젖어 두서없이 쭉 늘어 놓았습니다. 지금 보면 어지럽기 짝이 없는 문장들이지만 그래도 종종 다시 꺼내 보는 이유는 서툰 글과 호들갑 속에 그 순간의 감격과 감정들이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그 곳에서 아주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슬퍼했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감격과 실망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블로그에 하루에 하나씩 적어나간 모스크바 여행 이야기는 다분히 개인적인 기록, 이기적인 감상들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보고 또 공감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이색적인 풍경이 다른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겠습니다만, 난생 처음 겪은 영하 30도의 혹한과 말 한 마디 통하지 않은 도시에서 고생도 하고, 바보 같이 행동했던 에피소드들에도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일일이 답글을 달지 못했지만 매일 감사했습니다. 끈기가 부족한 제가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서른다섯편을 다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인 여행에 대한 과분한 관심 덕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기분 좋았던 것은 모스크바 여행을 앞둔 혹은 다녀온 분들이 여행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며 글을 남겨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골든링 호텔을 예약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던지, 짧은 스톱 오버 기간동안 모스크바에서 무엇을 봐야할지 결정하는 데 참고가 됐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요. 그리고 그 글에는 항상 그 무렵 모스크바의 풍경과 날씨, 분위기들이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읽어 보면서 제가 있을 때와 다른 모스크바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유쾌하게 여행 이야기를 마무리 했습니다.



"모스크바 이야기를 책으로 한 번 만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출판사 담당자분의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때 혹 마음이 변할까 냉큼 대답을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뒤늦게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쿵쾅거리더군요. 바라 마지 않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기회가 생겼습니다. 언젠가 이 여행 이야기를 좀 더 다듬어서 한 권으로 엮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 상상은 어디까지나 제 일기장 정도였으니까요. 실제 출간 준비가 시작되면서 들뜬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고, 서툰 글과 사진에 대한 걱정이 점점 커졌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습니다. 출간 기획안을 작성하던 지난 가을 어느날에는 완성된 책을 제 마음대로 한 번 상상해 보았는데, 무척 궁금해지더군요.




2015년, 그러니까 지난 겨울 초입의 어느날 첫 출판사 미팅이 있었습니다. 떨지 않는 척 하며 어떤 책이 될 지, 언제쯤 만들어질지 그런 얘기들을 했습니다만 새 셔츠에 넥타이까지 매고 간 그 날 제 모습은 누가 봐도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이었을 거예요.


그 날 저는 질문을 딱 하나 했습니다. '이게 책이 될 수 있을까요?' 오랜 이야기 끝에 이야기를 다시 써보는 건 어떻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블로그에 쓴 여행기보다 조금 더 깊고 솔직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저는 곧 '네, 그렇게 해 볼게요'라고 답했습니다만, 그 대답을 하기까지 아주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습니다. 아마도, 백지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에 대한 걱정이었겠죠. 하지만 묘하게 흥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이야기에 털어놓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할 기회가 한 번 더 생겼다는 기대감에. 그리고 블로그를 채우던 그 시절보다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졌을 제 이야기에.


그렇게 백지부터 다시, 모스크바 여행 이야기는 다시 시작됐습니다. 처음 모스크바행 비행기 티켓을 끊던 그 날부터 말이죠.



그 사이 저는 종종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스크바를 다녀온 후 저는 종종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됐습니다. 모스크바를 가던 날까지 꿈꿨던 체코 프라하를 다녀왔고 가까운 아시아부터 지구 남반구의 도시까지 바쁘게 다녔습니다. 도시마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다고 혼잣말을 하며 바쁘게 여행한 한 해, 저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들을 넘치게 보고 또 담았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으로 싸늘하고 어두웠던 겨울 도시를 그리워했습니다. 이 모든 여행의 시작에 아마 그 선택이 있지 않았겠냐며.


뜨거운 여름 도시에서 영하 25도의 혹한을, 눈부신 오후의 햇살 아래서 붉은 밤하늘을 떠올렸습니다. 여행마다 여권과 사진기 다음으로 챙긴 수첩에는 새롭게 적기 시작한 이야기들을 조각조각 담았습니다. 어디서부터 다시 꺼내야 할지, 무엇을 골라 담고 얼마나 더 솔직해져야 할지 막막했던 이야기는 그렇게 아주 작은 조각으로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 매일같이 이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



지난 여름은 유독 뜨거웠습니다.


2016년 여름은 여려 이유로 잊을 수 없는 계절입니다. 더위에 유독 약한 제게 지난 여름은 종종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로 혹독하고 길었습니다. 그리고 여름 내내, 매일 같이 글을 썼습니다. 면도하는 걸 잊고 머리는 자꾸 길어서 금세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더군요. 마감 기한이 가까워서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열 다섯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사이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다보니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쓰던 날과 크게 다를 것이 없더군요. 종일 한 문장에 매달려 쓰고 지우고 고치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사흘간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여름은 점점 더 길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지금 떠올리면 무더위 못지 않게 막막했던 것 같습니다.



- 출판사 미팅이 반복될 수록 저는 점점 더 작아졌습니다 -


언젠가 제게 어느 여름이 가장 뜨거웠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2016년 여름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날씨를 묻는 질문이던, 제 열정에 대한 궁금즘이던 대답은 같으니까요.

지난 여름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독촉 전화가 반복되면서 '정말 책이 나오긴 할까?'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그 순간이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찬바람이 한 줄기 스치던 날, 이야기도 끝났습니다.


2016년 8월의 어느 날, 습관처럼 노트북과 수첩, 펜을 들고 나서는 길에 낯선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습니다. 어느새 잊혀졌던 시원한 바람입니다.


'여름이 끝나긴 하려나 봐.'


그리고 그 날, 백지부터 다시 써내려간 모스크바 여행 이야기가 마무리 됐습니다. 책상 위를 보니 새삼 낯설더군요. 언제든 글을 적을 수 있게 새로 바꾼 노트북과 모스크바에서 적은 수첩, 한 문장에 꽁꽁 매여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던 날 종일 같은 노래를 반복하며 저를 응원해 준 오래된 아이팟부터 모스크바 현지에서 제 이야기를 접하고 흔쾌히 선물해 주신 러시아 텀블러까지. 크게 한 숨을 쉬고 두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 날 '끝났다' 라는 생각보다는 '이제 준비가 됐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친여행 in 모스크바의 새로운 이름

인생이 쓸 때, 모스크바


준비 없이 떠난 제 무모함을 비웃으며 지은 '미친여행 in 모스크바'라는 제목. 그 해 가장 매서웠던 열흘간 낯선 도시 모스크바에 머물며 겪은 제 여행기는 이제 '인생이 쓸 때, 모스크바'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같은 여행을 적었지만 그 때보다 조금 더 깊고 진하게 한 권으로 엮었습니다. 그 날의 사진을 모두 꺼내 처음부터 하나씩 보며 다시 골라 넣었고, 이제 더 남은 것이 없을 정도로 털어 넣었습니다. 




지난 여행기의 주인공이 '도시'에 대한 것들이었다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낯선 도시를 여행한 저의 무모함에 대한 것들입니다. 계절이 두 바퀴 돌고 다시 그 날과 같은 겨울에 세상에 나온 책, '인생이 쓸 때, 모스크바'가 많은 분들에게 여전히 우리에게 너무 낯선 도시 러시아 그리고 모스크바를 보는 창이 되기를, 블로그와 브런치를 통해 미친여행 in 모스크바 이야기를 본 분들에게는 그 순간들 뒤에 있던 진짜 여행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인생이 쓸 때, 모스크바'는 곧 오프라인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될 예정입니다.



더불어 감사의 뜻으로 여러분들에게 작게나마 선물을 드리는 이벤트를 기획중이니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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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sword 2016.11.22 08:53 신고

    실제 출판을 겪어보신 분들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을일이라 하실만큼 힘들다 하시던데...
    미팅이 진행될수록 작아지는 모습에서 모든게 느껴집니다 ㄷㄷㄷ
    먼땅에서 대박나시길 바래봄니다 ^^

    1.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말씀대로 만만치 않은 일이더군요.. ^^; 다신 하기 싫은데 또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먼 곳에서 응원 감사합니다!

  • kkotjong 2016.11.25 13:06 신고

    안녕하세요. 작년 5월 연휴를 이용해서 유학 중인 동생을 만나러 모스크바에 다녀왔어요. 가기 전 검색해보다가 이 블로그를 알게 되었고, 덕분에 제 감성보다 더 많은 걸 보고 느끼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감사해요. 책 출간 저도 기다렸습니다. 이제 곧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떨리네요! 종종 인스타에 올려주시는 사진도 잘 보고 있어요 팬입니다!ㅎㅎ

    1.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 같은 장소에 대한 다른 기억이 궁금하네요. 제 여행기가 여행에 도움이 됐다니 영광입니다. 책 열심히 만들었으니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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