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편지



이것은 아주 오래 지난 기록들이고

그리고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여전히 아주 의미있는 정서들이다.





돌아오는 길, 몰려드는 아쉬움 속 유일하게 남은 즐거움이라면 그동안의 기록들을 보며 여행을 되새기는 것에 대한 기대이다.

한바탕 여행 후에 남은 사진은 기념품과도 같아 휴대폰에 저장해두고 매일같이 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선택을 받지 못하는 사진이 적게는 수십배, 많게는 수백,수천배. 내게도 그런 장면들이 수만장 있다.

그렇다고 그 사진들에 내 이야기가 없을리가 없다. 담아내는 내 능력이 부족해 볼수록 부끄러워 덮어둔 것일 뿐.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 우연 혹은 의도적 이더라도 그 사진을 다시 꺼내보면 마치 누군가의 여행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설렌다.

내게 다시 듣는 무용담들이 종종 그 여행을 완전히 다른 여행으로 다시 새기기도 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모두 잊기 전에 짤막한 기록을 남기면 어떨까.

영영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덜컹"




덜컹하고 내려앉는다. 실제로 그렇다. 모르는 글자는 그림처럼 보이고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은 연주곡과 다름이 없다. 많은 여행자들은 공항의 설렘만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내게 공항은 그리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손바닥만한 창문으로 공항이 보이기 시작하면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지루한 비행을 잘 견뎠다는 성취감 비슷한 감정에 맘이 들뜨지만 그것도 잠시, 비행기가 나를 뱉어내고 나면 늘 한없이 막막한 풍경과 마주했다. -승무원들은 일 초라도 빨리 사람들을 밀어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모스크바 셰러미티예보 공항은 작고 낡아 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게이트를 나서 둘러보는데 할아버지 장례 때문에 급하게 갔던 진주 고속버스터미널이 떠올랐을 정도. 아에로 익스프레스 터미널로 걷다보니 곧 이 도시만큼이나 큰 규모의 공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역시나 첫인상이 중요한 것이라 지금도 내 기억 속 모스크바 공항은 이 작은 복도 하나 뿐이다.


처음 본 이 풍경을 능숙하게 빠져 나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28인치 대형 캐리어를 끌다 이 풍경 앞에서 잠시 멈췄다. 여행을 준비하며 흘겨본 이 글자들이 정말로 공항에 걸려 나를 더 막막하게 하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이런 세상이 실존한다는 것을 아마 믿지 않았나보다. 그나마 떠듬떠듬 읽을 줄 아는 영어가 덧붙여져 다행이었지만 이때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보다는 내가 이 말 한마디 안 통하는 곳에 와 있다는 것이 묘하게 흥분됐다.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 끝났다고 생각했던 여행의 준비는 이 장면을 보며 완성됐다. '재미 있겠는걸'


혹 내가 다시 이 공항에서 이 복도 위 같은 위치에 설 수는 있겠지만 이 장면을 다시 마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만난 반가움이나 편안함들도 여행의 즐거움이지만 그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몇 번이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오직 한 번만 마주할 수 있는 이 순간의 감정이 소중하다. 그리고 종종 이날의 막막한 감격이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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